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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교민회. 1965년 12월 창립

MorningNews 0 3,103 2020.02.19 07:20

책(冊)과 만남, 사람(人)과 만남, 소석. 정지원   


샌프란시스코 교민회. 1965년 12월 창립

숙원의 한인회관 매입. 1988년 3월 15일 개관 

7대. 9대 李敏輝회장때 4만달러 기금이 종자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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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리의 사나이’ 이민휘 일대기 『외길』을 읽으면서 이른바 『한인회』의 어제와 오늘을 새김질하게 된다. 

1965년 12월 26일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회의실에서 교포유지 33인이 발기인이 되어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발기인 33인중 7명의 발기인 대표는 김동우, 박만서, 송정률, 안복록, 정병호, 고정자, 김명호씨 였고 당시 총영사는 정도순. 임기 1년의 회장에 독립유공자인 김동우 선생을 천거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정식 이름은〈상항 지역 교민회』였고 ‘교민회는 상항지역에 거주하는 한국교포간의 친목과 상호협조를 도모하여 모국과의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고 조국문화의 이해증진과 소개를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


지금으로부터 55년전 샌프란시스코에 공식적인 한인회가 탄생한 셈이다. 

이날 창립총회에 몬트레이 지역에서 이하전 선생, 킴보칼러를 운영하는 김건영 선생, 노영한 목사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임원진은 부회장에 김재곤, 총무서기 김명호, 회계 김원용, 문화부장 김치은, 친교부장 원도간, 사회부장 고정자, 재정 박만서, 감사 정병호였다. 

교민회 회원은 『상항지역에 거주하는 18세 이상의 대한민국 교포. 즉 대한민국 국민 및 한국인의 혈통을 이은 거류민』이라고 명시했다. 

어쨌거나 1945년 8.15 ‘일제’가 패망하고 1948년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이어 때늦은 감도 있으나 샌프란시스코에 『교민회』가 창립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창립 반세기가 넘은 55년째의 세월이 흘렀다. 

봄•여름•가을•겨울. 즉 春風秋雨 55년을 맞는 샌프란시스코 한인회는 불협화음과 갈등•분열 등 진통도 있었으나, 특기할 대목의 하나는 1988년 4월 26일 745 Buchanan St 건물. 7000스퀘어 피트, 대지 10,350 스퀘어 피트를 (맹인재단)45만달러에 매입키로 하고 이날 35만 7천3백59달러를 지불하고 건물을 넘겨받았다. 

건물매입을 위해 비영리단체인K,A,D,C (Korean American Development Corporation)을 등록(대표, 상항의료원 정윤철)했다.  

상항한인회관 건물마련!! 샌프란시스코 한인사회에 이보다 더 기쁜 소식! 이 있을 것인 가. 1988년 3월 15일 상항지역 한인회관 개관식이 개최됐다. 

제 14대 현희강 총영사 때였다. 회관 건립 경위를 살피면 1986년 10월 10일 당시 한인회(회장 인진식)이사회에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 구성을 결의하고 그해 12월 15일 당시 상항종합의료원 원장인 정윤철 박사를 지명 위촉했다. 

정 박사에 의해 K,A,D,C를 등록(등록번호 1100141). 이어 건물매입에 박차를 가했다. 정 박사는 1만달러를 기탁하면서 본격적으로 모금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런데 건물주변 흑인 커뮤니티의 강한 반대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市는 3차에 걸쳐 공청회가 진행되면서 흑인 커뮤니티의 타결이 성사됐고 1988년 2월 18일 SF 市 기획국으로부터 한국인의 회관구입 사용허가를 취득했다. 샌프란시스코 한인들의 숙원인 회관 마련은 이와 같이 그 당시 여러 한인들의 충직한 단합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회관마련 종자돈은 제 7대와 9대 회장을 역임한 이민휘 회장때 모금했던 기금을 김원극 상항한미노인회장이 노인회 명의의 적금통장에 의해 한푼도 회실되지 않고 크게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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