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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의 사나이! 미주 한인사회의 맏형”평가

MorningNews 0 9 02.12 08:00

책(冊)과 만남, 사람(人)과 만남, 소석. 정지원     


“의리의 사나이! 미주 한인사회의 맏형”평가  

李敏揮 일대기 『외길』 도서출판 ‘예가 간행

’‘한인사회는 내 인생의 애환이 서린 내몸 같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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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民 李敏揮 일대기 『외길』 도서출판 ‘예가’에서 간행했다. 

외길 1부 차레를 보면 1장. 사람의 의미를 알게 해준, 감방생활. 2장. 인생의 분기점, 미국유학. 3장. 수렁에서의 한철. 4장 유년기의 회억. 5장. 대학가의 신화. 이민휘 주먹. 6장. 샌프란시스코, 내마음의 고향. 7장. LA에서의, 내 인생. 8장. 미주총연 회장시절. 이어 외길 2부. 동포사회발전 후원재단을 발족하다. 뜻과 의미로 본 로고. 지역사회단체 지원. 자랑스런 한국인상 제정의 의미. 미주동포후원재단으로 개명 및 전지역 확대개편. 한인사회 든든한 맏형. 국민훈장 무궁화장 서훈. 5.16민족상 수상. 끝을 맺으며.(화보 제외 본문만 330페이지). ]


一民 이라는 아호를 지닌 李敏揮 회장의 眞面目이 담겨있는 자서전격인 이책은 미주 한인이민사의 문헌적 자료였다.  
이민휘 회장. 그는 누구인가? 미주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 한인사회에 널리 알려진 ‘이민휘 회장’이다. 
의리의 사나이 이민휘 팔순기념(2013년 4월 25일) DVD(미주동포후원재단)에서 ‘내 삶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랬다. ‘이민휘 회장’의 유래를 살펴보면--- 1969년 샌프란시스코로 이민.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와 근교 공업도시 오클랜드 등지에 한국 이민자는 이미 8천여명이 넘었다). 
1971년 11월 샌프란시스코 교민회 임시총회에서 제 7대 회장에 선출됐다. 
1972년 서울 전국체전 재미동포 선수단 고문. 1973년 샌프란시스코 한국라디오 및 TV방송 회장. 1974년 샌프란시스코 한인회 제9대 회장 재선. 같은해 전국체전 재미동포 선수단 단장. 1975년 재외 국민통일회의 미주지역 대표에 이어 재미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1979년 남가주 한인회 제12대 회장. 1982년 LA한인회 회장. 1983년 한미 케이블TV 방송 회장. 1990년 재미 대한체육회 제6대 회장. 이어 1991년 제 7대 회장. 
1993년 재미구호재단 이사장. 1995년 미주한인회 총연 제 16대 회장. 
이어 1997년 총연 제17대 회장 재선. 1999년 필립정보통신 회장. 2006년 미주동포후원재단 초대 이사장. 2008년 후원재단 2대 이사장 재선. 2012년 후원재단 명예이사장을 역임했다. 
이민휘 회장이 샌프란시스코와 LA에서 한인회장를 하면서 많은 족적을 남겼다. 
센프란시스코로 이민 오기전, 그는 1956년 미국 유학생이었다. 
1959년 산호세 대학 행정학과를 졸업. 고된 육체노동과 함께 학업을 마치고 귀국했다. 
미국유학. 1956년 12월 22일 샌프란시스코 감리교회에서 피터 안 목사 주례로 이봉희씨와 조철한 결혼식을 올렸다. 
숱한 사연이 얽혀있는 일화중 이 란을 통해 빠트릴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아버지는 독립지사인 운호 李奎甲선생이다. 
그리고 빈장(장인)은 애국지사인 연당 李甲成(33인중 한분)선생이다. 
이 일대기에 화보 64페이지에 내용물이 담겨있는 사진 2백여점이 실려있다. 
이는 개인 이민휘 회장의 기록이며 또한 이민사의 기록이 담긴 문헌적 자료였다. 
상벌은 국민훈장 동백장(1972년). 체육훈장 거상장(198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1910년). 5.16 민족상(1912년).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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