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걸레

해초 0 37 09.09 15:48
시인 고은은 <걸레>라는 작품에서 걸레가 되어 나라의 오욕과 오염을 단 한군데라도 겸허하게 닦고 싶다는 고백을 합니다. 시대의 아픔과 불의를 경험했던 시인에게 차라리 부정한 현실을 닦아내는 걸레가 되는 편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 보였던 겁니다. 그러니까 더러워서 걸레가 아니라 더러운 것을 닦아서 걸레가 된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래부터 걸레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 용도 때문에 그렇게 불릴 뿐이라는 것이지요. 임인규의 시 “걸레 보시(報施)”도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걸레에 비유하여 표현합니다. 자식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그 몸 다 헤어질 때까지 가려주고, 지저분한 것은 다 닦아주니 어버이의 그 사랑이 걸레나 다름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때론 하나님도 걸레를 드셔야 할 만큼 세상이 타락해 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부패한 성전을 척결하기 위해 회초리를 드신 예수처럼, 아버지 하나님도 걸레를 드시고 이 세상의 더럽고 추한 곳곳을 깨끗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성결케 하는 걸레이니, '거룩한 걸레'라 할만 하지요. 우리의 허물과 범죄한 세상을 닦기 위해 사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걸레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자녀 된 우리들을 위해 자신의 몸이 뜯겨 나가도록 모든 것을 내어주신 지극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겨진 우리에겐 거룩한 소명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거룩한 걸레가 되라는 소명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세상에 비친 교회의 모습을 과연 거룩한 걸레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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