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잘 모른다는 것과 동의어일 때가 많다고 합니다. 소설가인 존 스타인벡은 “타인을 정말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그들이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시인 나태주가 그의 시 <풀꽃>에서 이런 권면을 해야만 했을까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건 이미 보는 사람의 판단입니다. 그런데 그런 판단에 앞서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거에요. 자세히 보고, 또 오래 봐주라는 겁니다. 무엇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똑같은 경험을 당하게 될 처지이니까 말이지요.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한탄하시는 예수님의 긴 한숨이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 합니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하나의 사례가 된 이야기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기껏해야 자신과 같을 것이란 편견 속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 힐난했던 나다나엘과 똑같은 눈으로 보았던 것이지요. 스스로 선한 것이 나올 게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꼴입니다. 조금만 자세히 긴 호흡을 가지고 보았다면 그분의 진가를 알아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매일 말씀도 그렇게 묵상해야 합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마음에 담아 두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그 때 비로소 감동스러운 주님의 진면목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