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처럼

해초 0 1,541 2020.09.01 14:16
물자가 귀한 시절, 아이들은 손가락 두세 마디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연필 도막을 볼펜 자루 뒤에 꽂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다 닳아 없어진 모양을 본 떠서 몽당연필이라고 불렀던 추억의 학용품입니다. 쓰다 보면 정도 가고, 나중에는 오히려 경쟁하듯 몽당연필을 더 많이 갖고 싶어하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요즘은 몽당연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껴서 오래도록 사용하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 궁상맞고 구차하게까지 여겨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가 그만큼 많이 변했다는 증거입니다.

헌데 이 몽당연필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극빈자들과 병약자들을 위해 온 생애를 헌신한 마더 테레사입니다. 작은 체구의 테레사 수녀는 스스로를 표현할 때도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이라고 스스로를 낮추며 겸손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보잘것없는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오직 그분의 뜻만 따르겠다는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이지요. 어떻게든 목청을 돋우어 자기 생각도 하나님의 것인 양 혹세무민하는 종교지도자들로 어지러운 이 시대에, 몽당연필의 낮고 소박한 모습이 불현듯 그리워지는 것은 아마도 저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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