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색 순교

해초 0 1,236 2022.03.26 01:21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이 걸으셨던 고난의 길(Via Dolorosa)을 재현하는 행사가 여러 곳에서 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 역을 맡은 사람은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짊어진 채로 고난의 행진에 참여합니다. 일부 기독교 국가에서는 직접 손과 발에 못을 박는 고통을 체험하는 극단적 방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이토록 십자가를 지고 고통스런 행위를 극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물론 그 이유는 지리적 차이만큼이나 다양하겠지요.  그러고 보면 예수님도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여기서 ‘날마다’라는 표현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행동을 강조한 것입니다.

오래 전 켈틱 지역의  기독교 전통에서는 일회적으로 피 흘려 목숨을 희생하는 ‘적색순교’와 수도자들의 금욕과 절제의 삶을 의미하는 ‘백색 순교’,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위해 참고 견디는 삶을 뜻하는 ‘청색순교’를 구분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요청은 청색순교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의 수요일 예식을 통해 우리는 재를 바르며 죽을 수밖에 없는 허무한 인생을 주님 앞에 참회한 바 있습니다.  참회를 일회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사순절 동안 우리는 날마다 옛사람이 죽는 청색 순교의 체험을 해야 합니다. 매일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죽노라’는 순교적 고백과 결단이 이루어지는 사순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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