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혜주의를 넘어서

해초 0 807 2022.02.27 00:04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고대 사회의 규범은 ‘호혜주의(reciprocity)’를 가장 이상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받은 대로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법체계도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하는’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을 기본 바탕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흔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법칙입니다. 이러한 법질서는 누군가로부터 위해를 당했을 때 그 보다 더 크게 앙갚음하려는 감정의 본능을 막아서 복수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차단시키고자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윤리 규범의 원리도 ‘자신이 당하기 싫어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식의 판단이 아주 강했습니다. 당대 유대 랍비의 최고 스승(가말리엘의 선생)으로 알려진 힐렐(Hillel)도 ‘자신이 하기 싫어 하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야 말로 율법의 정수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와 달리 예수님의 가르침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것이었습니다. 호혜주의가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에 강조점을 둔 소극적 방식이었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내게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자신이 받기 원하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해 주는 매우 적극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받은 대로 돌려주는 선”에 머물지 말고 ‘더 선한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세상과 다른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은 일면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대단히 계산적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받은 것도 제대로 돌려 주려 하지 않는 파렴치한 이들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선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받은 것 없어도 더 주려 하는 적극적 사랑'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서 주는 호혜주의를 넘어서, 때로는 원치 않는 상처를 받는 순간에도 남으로부터 받기를 원하는 그 사랑을 줄 수 있을 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이 땅 가운데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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