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 한다면
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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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5 05:25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여류시인 가운데 하나인 엘리자베스 배릿(Elizabeth Barett)은 15세 때 낙마 사고로 인해 척추를 다친 이후, 시한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연인을 만나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런 시를 썼습니다.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세요/ ‘난 저 여자를 사랑해 / 미소 때문에 예쁘기 때문에/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나와 꼭 어울리기 때문에/ 어느날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러한 것은 그 자체가 변하거나/ 당신으로 하여금 변하게 할 테니까요/ 그처럼 맺어진 사랑은 그처럼 풀려버릴 거에요…오로지 사랑을 위해 날 사랑해 주세요/ 그래서 언제까지나/ 당신이 사랑할 수 있게”
사랑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시인의 말은 단순히 감성에 호소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논리적인 설득력을 갖는 말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그 조건과 그 조건을 바라보는 사람의 판단은 언제나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달라는 시인의 말은 예수님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무엇 때문에 주는 조건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 조건 없이 다른 한 뺨을 내어 줄 뿐만 아니라,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원수조차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할 수 있어서', 혹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순간에, 그리고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바로 그 때에, 기꺼이 행하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해야 한다면,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저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조건없는 사랑을 받은 이만이 할 수 있는 당연한 특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