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을 드세요

해초 0 1,601 2021.08.06 15:01
우리는 예부터 부모가 돌아가시면 천붕(天崩)이라하고,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면 참척(慘慽)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부모를 여의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고, 자식을 잃는 것은 땅이 꺼지는 아픔과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땅에 묻어도, 자식은 더 이상 묻을 땅이 없어서 가슴에 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기껏해야 몇 뼘 밖에 되지 않는 가슴에 생때같은 자식을 묻으려 하니, 부모의 가슴은 터질듯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참담한 아픔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부모의 고통은 참척지변(慘慽之變)이라고 해서 자식을 잃은 아픔을 하나의 변고(變故)라고 부른 것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먼저 와서 먼저 가는 것이 순리라면, 늦게 세상에 온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는 일이야말로 순서가 잘못된, 말그대로 “Out of Order”의 상태라는 것이지요.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한 유명 작가가 더도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이치에서 벗어난 일이 아니냐고 묻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응답은 ‘십자가 위에서 아들을 잃은 나도 너처럼 아프다’는 핑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들을 통해 영원한 소망을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생명의 떡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사람들이 그를 취할 때마다 영생을 얻도록 인도해 주신 것이지요. 비록 십자가에 달리신 아들 예수를 보며 참척의 고통을 하나님도 함께 경험하신 것은 맞지만, 그것은 인간의 고통스러운 실존에 동참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버림받은 삶의 증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언약입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것 같은 하나님이 지금도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증거입니다. 생명의 희망을 통해 고통받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위로하고 계신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한 말씀만 해달라며 절규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참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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