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맛 나는 이유
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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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4 01:22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먹는 것”은 필요 불가결한 일입니다. 먹지 않아도 되는 무생물은 있어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인간의 언어에서 “먹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용례가 발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말에도 “먹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표현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래 전, 4전 5기의 대명사로 유명했던 홍수환이란 권투선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시합에서 승리한 뒤,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며 “엄마, 나 참피온 먹었어”라고 한 인터뷰 내용은 유명한 일화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치인이 청탁을 댓가로 돈을 받을 때도 ‘돈 먹었다’라고 해서 탐욕스러운 모습을 표현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나이나 욕도 먹는다고 말합니다. 좋은 것만 먹는 게 아니라 인생은 다소 먹기 싫은 것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우리말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사업이 잘 안 되어 손해를 본 사람들도 ‘나 사업 말아 먹었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떤 분들은 우리 민족이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이 언어로 다 분출된 결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나 배를 많이 곯아 보았으면 무생물인 시계도 밥을 준다고 할 정도입니다. “시계도 얼마나 배가 고플까?”를 생각한다는 것은 참 놀라운 발상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먹는 것에 대한 욕망 때문이라기 보다는, 남이 겪는 감정이나 상태를 공감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밥 한 술 떠서 먹여 주실 때마다 같이 입을 벌리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건 배가 고파서 벌린 입이 아니라 자식이 맛있게 먹는 걸 함께 느끼는 공감의 모습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적은 양의 양식으로 많은 사람의 주린 배를 채워 준 사건으로 기억하기 보다, 우리의 고통을 공감하신 주님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먹을 것이 너무나 많은 시대를 살면서도 살 맛이 잘 안난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사랑을 잃어버린 시대가 가진 한계라고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살 맛나게 하는 길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