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다리 공동체

해초 0 1,360 2021.03.12 13:29
오래 전 교회 어르신들을 모시고 체리 피킹을 하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연로하신 분들이었지만, 얼마나 왕성하게 움직이시던지 모두가 한 박스 가득히 체리를 담아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아흔이 다 된 여자 권사님 한 분이 속상한 마음에 제게 전화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손주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마음껏 따 온 체리가 밤새 상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이유를 듣고보니 무게에 따라 값을 지불해야 하는 까닭에, 계산하기 전에 체리에 달린 꽁다리들을 죄다 떼어내 버린 게 문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비록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라 해도, 조그맣게 달린 체리의 꽁다리 줄기가 그나마 생명 연장의 힘이 되어줄 것이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예수께서 교회 공동체를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바 있습니다. 함께 생명의 양식을 나누는 식구이자, 그리스도의 제자로 길러냄으로 열매를 맺는 신앙의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체리 피킹 이후에 이민교회는 한 가지 더 독특한 특징을 가진 공동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꽁다리 공동체’라는 특징입니다. 고향을 떠난 이민자의 삶이란 게, 실은 끈 떨어진 연처럼 정처없이 부유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모국을 뿌리로 삼은 이민자들이 모인 이민 교회가 체리의 꽁다리 줄기처럼 이민자들에게 주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거에요. 영적인 본향으로 가는 생명의 뿌리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이민자들에게 고국의 정취를 함께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는 꽁다리 역할을 해 주는 것이지요. 이민의 동향도 변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이민 교회가 꽁다리 공동체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감당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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