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부인

해초 0 1,377 2021.02.27 06:2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중에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가장 잘 함축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다 보면, 그 의미가 조금은 애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곤 합니다. 어떻게 해야 자기를 부인할 수 있을지 쉽게 와닿지 않는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존재로서의 자신을 부정한다는 것이 때로는 삶의 뿌리마저 흔드는 것은 아닌가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고, 욕망의 근원인 자기를 부정하는 것으로 좁혀 생각한다 해도 어디까지를 부정해야 할 부분인지 규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철학자인 알랭 바디우(Alain Badiou)가 내린 사랑의 정의는 이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그의 정의에 의하면, 사랑이란 ‘하나’의 지배가 균열되었을 때, ‘둘’이 생각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균열된 하나가 바로 자기 부인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지배하던 자기가 부인되는 순간, 함께 하는 주변의 타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 중심적 시선이 무너지면서 생겨난 결과라는 뜻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행위도 일종의 자기 중심적인 겉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룰 일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때문에 사랑이야 말로 이 땅에서 순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행해야 할 자기 부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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