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관천(坐井觀天)

해초 0 1,593 2021.01.30 03:18
대개의 사람들은 돌려서 말하거나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 개방형(open-ended) 말투보다 규정하여 단언하는 말투에 더 신뢰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강하게 밀어붙일수록 사람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이 매우 단순하고 강력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좁게만 한정하여 바라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기 마련입니다. “좌정관천(坐井觀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에 앉아서 하늘을 본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드넓은 하늘도 우물 크기 밖에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좁은 식견으로 가두어 두려는 어리석음이 어떤 모습인가를 잘 보여주는 글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의 구절을 자신의 관점으로 취사선택하여, 마치 진리의 말씀인 것처럼 호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대언하는 자가, 스스로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진리는 거짓으로 둔갑하게 되는 법입니다.

바울이 위대한 선지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울의 말만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할 만큼 특정한 권위를 갖고 있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입장을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철저하게 내려놓으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제나 목사라는 제도적인 권위를 내세워 사람들을 강요하려 드는 권위주의적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도리어 듣는 자들의 입장을 언제나 배려하여, 바울은 겸손하고 유순한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영적 권위의 기초를 이룬 힘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참 선지자를 구별하는 기준은 그 말을 전하는 자의 진정성을 통해서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것이지요. 본이 되지 않는 자의 말은 그만큼 권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말로 선포된 복음을 삶에서 실현할 때, 비로소 말씀의 권위와 진정성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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