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벙주초

MorningNews 0 1,601 2020.08.01 05:38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 가운데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활용하면서도 멋과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는 건축물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개심사의 범종각이나 청룡사 대웅전에 사용된 휜 나무는 불안하고 흉해 보일지 몰라도, 곧은 나무와 다름없이 기둥의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습니다. 비정형적인 질서로 가득 차 있는 자연에서 굳이 곧은 것만을 쓸모 있는 것이라고 골라 사용하는 현대 서양의 인위적이고 효율적 가치관과는 큰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우리의 옛날 장인들은 뒤틀리고 휜 나무도 손대지 않은 그대로 기둥과 대들보의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곧거나 휘거나 상관없이 나름대로 제 몫이 다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이러한 생각은 초석을 놓는 데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덤벙주초'라고 해서 자연상태의 돌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가 기둥의 기초로 쓴 것입니다. 산에 박혀 있던 울퉁불퉁하고 모난 돌을 가져다가 다듬지 않고 초석으로 사용한다는 발상은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모양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안정성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휜 나무나 마찬가지로 구조적 안정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둥의 밑동이 박히는 부분을 다듬어 맞게 끼우는 최소한의 작업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휜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자연석을 있는 그대로 초석을 삼는 것은 전혀 세상의 눈이나 표준화된 기준을 따르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 안에는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사물들은 다 나름대로의 가치와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사실은 당시 유대 사회의 80%이상을 차지하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존재를 말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것이 크게 되는 성장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존재가치가 미비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의로운 세상을 전하고자 하셨던 것이지요. 지금은 온전하지 못한 휘고 모난 나무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덤벙주초처럼 하늘의 나라를 세우는 초석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놀라운 이유입니다.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28 시편 묵상(35) 해초 2023.04.01 315
127 시편 묵상(34) 해초 2023.04.01 275
126 시편 묵상(33) 해초 2023.04.01 943
125 시편 묵상(32) 해초 2023.04.01 267
124 시편 묵상(31) 해초 2023.04.01 966
123 시편 묵상(30) 해초 2023.02.24 312
122 시편 묵상(29) 해초 2023.02.24 357
121 시편 묵상(28) 해초 2023.02.24 361
120 시편 묵상(27) 해초 2023.02.24 285
119 시편 묵상(26) 해초 2023.02.24 336
118 시편 묵상(25) 해초 2023.02.24 374
117 시편 묵상(24) 해초 2023.01.21 351
116 시편 묵상(23) 해초 2023.01.21 422
115 시편 묵상(22) 해초 2023.01.21 302
114 시편 묵상(21) 해초 2023.01.21 710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