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적인 건축 가운데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활용하면서도 멋과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는 건축물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개심사의 범종각이나 청룡사 대웅전에 사용된 휜 나무는 불안하고 흉해 보일지 몰라도, 곧은 나무와 다름없이 기둥의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습니다. 비정형적인 질서로 가득 차 있는 자연에서 굳이 곧은 것만을 쓸모 있는 것이라고 골라 사용하는 현대 서양의 인위적이고 효율적 가치관과는 큰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우리의 옛날 장인들은 뒤틀리고 휜 나무도 손대지 않은 그대로 기둥과 대들보의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곧거나 휘거나 상관없이 나름대로 제 몫이 다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이러한 생각은 초석을 놓는 데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덤벙주초'라고 해서 자연상태의 돌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가 기둥의 기초로 쓴 것입니다. 산에 박혀 있던 울퉁불퉁하고 모난 돌을 가져다가 다듬지 않고 초석으로 사용한다는 발상은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모양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안정성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휜 나무나 마찬가지로 구조적 안정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둥의 밑동이 박히는 부분을 다듬어 맞게 끼우는 최소한의 작업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휜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자연석을 있는 그대로 초석을 삼는 것은 전혀 세상의 눈이나 표준화된 기준을 따르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 안에는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사물들은 다 나름대로의 가치와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사실은 당시 유대 사회의 80%이상을 차지하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존재를 말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것이 크게 되는 성장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존재가치가 미비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의로운 세상을 전하고자 하셨던 것이지요. 지금은 온전하지 못한 휘고 모난 나무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덤벙주초처럼 하늘의 나라를 세우는 초석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놀라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