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해초 0 1,503 2020.10.30 10:14
프랑스의 시인인 폴 발레리의 작품 중에 ‘해변의 묘지’라는 시가 있는 데, 마지막 부분에 매우 인상 적인 표현이 하나 나옵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라는 구절입니다. 부는 바람에 삶의 의지가 생기는 경험을 아마도 시인은 그렇게 표현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순간에 어디선가 바람이 불면 잠시 멈추어 있던 사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생명을 얻은 것처럼 누운 풀이 일어나 나부끼듯이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가져다 주는 것이지요. 머리가 희끗해질만큼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는데도 지나간 옛 기억에 마치 사춘기 소녀가 된 마냥 마음이 설레일 때가 있습니다. 잔잔한 호숫가에 돌을 던지 듯 마음에 파장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세월의 흔적을 젊음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나서야 발견하기도 합니다. 멈춘 듯 서 있는 인생에, 이는 바람이 가져다 준 선물입니다. 마른 뼈와 같이 생기를 잃어버린 삶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생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을 뿐입니다. 마르고 시들어 버릴 운명이라는 것이지요.  성령의 바람이 불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스러진 영혼을 깨워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초대하는 성령에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이유입니다. 그 때 비로소 자신은 진정한 삶의 의지를 회복하고, 누군가에게는 지친 삶을 일깨우는 바람이 되어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듯한 이 시대에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상생의 바람이 아닐까요! 서로에게 생명의 의지를 불어 넣어 주는 생명의 바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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