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는 문이 없다

해초 0 1,556 2020.10.17 01:47
지옥에 대한 여러 가지 묘사들이 많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지옥만큼 고통스러운 곳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모를까, 눈 앞에 펼쳐진 천국을 바라보며 건너 가지도 못하고 그저 끝없는 고통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 대한 성서의 묘사입니다. 구렁텅이를 사이에 두고 천국과 지옥이 갈라져 있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생전에 부자와 나사로 사이를 가르고 있던 커다란 대문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사후세계의 구렁텅이와 현실의 대문이 일종의 평행구조를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이 둘은 사이를 구별하는 기준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죽어서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구렁텅이는 결코 넘나들 수 없는 영원한 장벽인데 반해, 대문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오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쪽은 영원히 단절된 구별이라면, 다른 한쪽은 의지에 따라 출입이 가능한 연결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중요한 가르침을 얻게 됩니다. 부자가 구렁텅이를 사이에 두고 지옥에 떨어진 것은 어쩌면 생전에 자신의 집 밖에 있던 가난한 나사로에게 문을 열지 않은 무관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살아서 이웃을 향해 대문을 넘나들지 않으면, 영원히 소통이 불가능한 단절된 세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경고인 셈이지요. 지옥엔 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현실에선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활짝 열 수 있는 그 문을 지금 열어서 주변의 이웃을 살펴 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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