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로서는 중보기도의 대체표현으로 제시될 만한 마땅한 표현이 없다. 우리가 “남을 위한 기도”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한 약간 불만족스럽지만 중보기도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단어인 도고보다는 많이 들어본 중보기도라는 단어가 그대로 낫지 않겠는가? 또 어찌 생각하면 우리가 “중보기도”라는 단어를 그렇게 너무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어떤 사람 사이에서 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은 예수님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자신의 위치에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유일한 중보자를 통해서만 기도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남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어느 정도 하나님과 그 사람 중간에 서서 그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영어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예수님은 유일한 중보자(The Mediator)가 되시지만, 사람은 그 중보자를 통해서 기도하는 작은 중보자 (a mediator)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남을 위해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 부르든 도고라 부르든 아니면 길게 “남을 위한 기도”라 부르든 사실 그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좋아하신다. 우리가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려고 해도 100% 그렇게 되기가 참 힘들다. 그런데 나와 별로 상관없는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때 이런 기도에는 사심이 들어가기가 힘들다. 이런 기도는 순수해서 하나님께서 더 잘 들어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서로 마음을 나누며 서로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중보기도자들이 되어서 함께 기도의 응답을 받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