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걱정하는 백성에게 사무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사무엘상 12:23). 이렇게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중보기도”라 부른다. 그런데 이 “중보”라는 용어의 사용을 문제 삼는 분들이 있다. 중보기도는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남을 위한 기도를 지칭할 때 중보기도라는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분들이 제시하는 중심 성경구절이 디모데전서 2장 5절이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중보자(中保者)의 뜻은 글자 그대로 “중간에서 돕는 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중간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주시는 분이다. 이런 중보의 사역은 이 세상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 한 분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중보”라는 단어를 일반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중보기도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면 남을 위해 하는 기도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중보기도의 용어 사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기도를 그냥 “남을 위한 기도”라고 하든지, 아니면 디모데전서 2장 1절에 나오는 “도고”(禱告)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도고”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이 단어는 그리스어 ἐντεύξεις(enteukseis)를 옮긴 것으로서 개역성경에서만 딱 한 번 사용되고 있다. 한국인에게 너무 생소해서 아무도 사용하고 있지 않고 한국어 사전에도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 단어는 그리스어enteukseis의 의미를 제대로 옮겨주지도 못한다. 그리스어 단어는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이 도고라는 단어에는 기도한다는 의미만 있지 “누군가를 위해서”의 의미는 없다. 도고(禱告)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 “기도하여 고한다”는 뜻만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