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경우는 다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의인이 악인과 함께 칼의 심판을 받는다는 내용은 개인사에 관계하는 형사법정의 상황이 아니라, 민족 전체에 관계하는 공동 운명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여호수아
7장에 나오는 아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간은 여리고와의
전투에서 얻게 될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을 어기고 값나가는 물건을 따로 떼어서 몰래 감추어 두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다음 이어지는 아이성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패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왜 그러셨을까? 아간만 처벌하시면 되는 것을 왜 온 이스라엘을 처벌하신 것일까? 그 이유는 아간의 범죄는 그 사람 혼자만의 범죄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범죄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범죄가 가지는 사회적 파장성을 여호수아 7장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7: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7:11).
여기에 범죄의 주체로 아간이라는 개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들” 혹은 “이스라엘”을 언급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명령하신 내용은 아간 개인에게 주신 명령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두에게 주신 명령이다. 여리고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것이기 때문에 백성 중 어느 누구도 전쟁을 통해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사사로이 취하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 되어서 신성모독의 죄를 짓는 것이 되고, 이에 대해 당연히 엄중한 처벌이 내리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간의 범죄는 개인에게 주신 명령을 어긴 것이 아니라 전쟁의 상황에서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주신 명령을 어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