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믿음(1)

홍삼열 0 14 06.11 06:54

히브리서 111절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 정의한다. 믿음은 확률적으로 가능하니까 믿어지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비록 확률적으로는 안 일어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다면 반드시 일어난다고 믿는 믿음, 그래서 “반드시 그렇게 된다”에 나의 모든 것을 거는 믿음, 이것이 진짜 믿음이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외줄을 걸고 그 위를 걷기도 하고 심지어는 외바퀴 수레를 끌고 폭포를 건너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묘기를 보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폭포 주위로 모여 들었다. 그때 그가 한 사람에게 이렇게 질문하였다. “선생님, 제가 이 외줄을 타고 폭포를 건널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물론 믿지요. 당신이 이전에 여러 번 그렇게 한 것을 보았거든요.” “그렇다면 제가 줄 위에서 외바퀴 수레를 밀고서 폭포를 건널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예, 믿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 외바퀴 수레에 사람을 태우고 폭포를 건널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예,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선생님을 이 수레에 태우고 제가 폭포를 건너고 싶은데 여기 올라오시겠습니까?” “절대로 안 되죠. 저는 죽어도 그런 일은 안 합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대화에서 세 가지 종류의 믿음을 발견한다. “나는 곡예사가 줄을 타고 폭포를 건너는 것을 봐서 안다.” 이것은 지식으로서의 믿음이다. “나는 그 곡예사가 외바퀴 수레를 끌고 폭포를 건널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지적 동의로서의 믿음이다. 그런데 “나는 그가 끄는 수레 안에 앉아서 함께 폭포를 건널 수 있다. 나는 곡예사에게 나의 생명을 맡긴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믿음이다. 바로 신뢰의 믿음, 진짜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 어떤 것일까? 물어보나마다 세 번째이다. 남들도 다 아는 정도의 사실을 아는 지식으로서의 믿음도 아니고, 머리로만 아는 지적 동의의 믿음도 아니고, 내 가슴으로 알고 그 진리를 위해 나의 생명을 바치겠다는 믿음, 바로 전적 신뢰의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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