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담의 죄 때문에 나도 죄인이 되어야 하나요?(2)

홍삼열 0 4,810 2012.11.15 15:13

둘째 설명은 아담이 온 인류를 대표한다는 대표성의 원리이다. 국회위원들이 국민을 대표해서 법을 만들면 국민들은 자동적으로 자신이 그 법을 만든 것으로 간주되어 스스로 그 법의 구속을 받는 것이고, 국가대표 선수가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면 단지 그 개인이 우승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우승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선수를 통해 국민 전체가 우승을 한 것이 된다는 논리이다. 같은 이치로 아담이 인류의 조상으로서 죄를 지을 때 그것은 모든 인류를 대표해서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현재 이곳에 사는 내가 죄인으로 불리는 것이 절대 억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설명방법보다 다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싶다. 즉 경험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싶다. 원죄라는 것을 위와 같이 물질/육체의 차원이나 대표성이라는 개념의 차원에서 설명하기보다는 모든 사람 속에 들어 있는 죄의 경향성으로 보면 어떨까? 우리가 경험으로 아는 사실이 있는데, 사람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선과 악을 함께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그냥 놔두면 그 아이가 악한 쪽으로 발전할까 아니면 선한 쪽으로 발전할까? 십중팔구는 악한 쪽으로 발전한다. 선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교육시켜도 잘 습득이 되지 않지만, 악한 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습득하여 즐겨 행하지 않는가? 이것이 우리의 공통된 경험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뭘 말해주는가? 인간이 행하는 악행은 단순히 나쁜 환경이나 좋지 않은 DNA를 탓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하고 근본적인 뿌리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로 설명이 불가능한 이 근원적인 무언가가 있는데,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원죄로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죄인이 된 것에 대해 아담을 탓하거나 아니면 아예 원죄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며 원죄의 개념 자체를 부인하는 것보다는 현재 나의 죄성을 겸허히 인정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죄성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태도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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