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은 왜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까?(1)

홍삼열 0 3,703 2015.01.13 03:44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바라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왜 기독교인들은 제사를 드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부모에 대해 효심(孝心)이 있는 사람이면 제사를 통해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기본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인들의 입장은 제사는 단순히 부모님에 대한 효심의 표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상숭배 혹은 귀신숭배이기 때문에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 차이는 처음 천주교가 한국에 도입될 때부터 있었고 이 문제 때문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천주교가 한국에 처음 전파될 때 주로 서양학문을 도입하려는 서학파에 의해서 소개되었다. 종교적인 차원에서의 소개가 아니라 순전히 학문적인 차원에서의 소개였다. 당시 서학파 지식인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것은 성리학(性理學)의 사변적 공론이었다.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지식을 위한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당시의 성리학에 염증을 느끼고 실용적 학문을 추구하면서 서학관련 서적들을 탐독하였는데, 서학의 물질적 측면인 기()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의 정신적 근거가 되는 이()의 세계, 즉 종교/철학에도 관심을 두었다. 이런 관심은 자연적으로 서양문화의 기초가 되는 기독교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이 되었는데, 이들은 천주교를 유교와 반대가 되는 사학(邪學) 즉 잘못된 학문이 아니라 유교의 상제(上帝)사상과 통하는 보유론(補儒論)적 체계라고 믿었다. 즉 유교에서 하늘을 보는 입장과 기독교에서 하나님/하느님을 보는 입장이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이고, 기독교는 충분히 유교를 사상적으로 보충해줄 수 있는 이론, 즉 보유론이라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적어도 서학파에서는 천주교를 사상적으로는 배척하지 않았다.

그런데 천주교가 보유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일명 진산사건(신해박해)이었다. 이 사건은 1791년 전라도 진산에서 천주교인인 양반 윤지충과 권상연이 조상제사를 폐지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처형된 사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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